남파랑길 65코스는 통영 도남관광단지에서 광도면 죽림해안누리길까지 약 15km를 잇는 구간으로, 자연과 예술, 마을과 바다가 교차하는 특별한 도보 길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빛과 풍경, 바람과 향기 속에서 걷는 이는 어느새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느린 걸음 속의 위로를 마주하게 된다. 이 글에서는 65코스를 따라 걸으며 만난 감성적인 장면들,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난 작은 깨달음과 사색의 순간들을 함께 나눈다.
길 위에 피어나는 감정의 풍경
삶이 지치고 마음이 조용히 무너질 때, 우리는 걷는 것을 떠올린다.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을 때, 두 발을 움직여 세상을 천천히 다시 느끼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남파랑길 65코스는 바로 그런 마음을 품고 걷기에 더없이 적절한 길이다. 복잡한 도시의 리듬에서 한 걸음 물러나, 마음을 자연의 시간에 맡겨보는 여정. 그 시작은 통영 도남관광단지에서부터다.이 구간은 화려한 풍경보다는 차분한 장면들이 이어진다. 그래서 더 깊은 감정이 차오른다. 길 위에 놓인 낙엽 하나, 해안선을 따라 흘러가는 잔물결, 바닷가 작은 포구에서 나지막이 들려오는 삶의 소리들. 그것들은 시선을 사로잡기보다는, 마음 깊은 곳에 스며들며 천천히 감정을 흔든다. 그 조용한 떨림 속에서 우리는 오래 묻어두었던 감정을 꺼내어 바라보고, 문득 잊고 있었던 나를 마주하게 된다.
남파랑길 65코스의 매력은 단순한 자연 풍경에 있지 않다. 이 길은 사람의 삶과 예술, 그리고 바다의 시간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감정의 장면들'로 가득하다. 걷는 동안, 누군가의 추억을 지나고, 어떤 날의 감정을 다시 되짚으며, 걷는 이 자신의 이야기를 새롭게 써 내려가게 된다. 바다와 함께 걷는 그 시간 동안, 발걸음은 천천히 마음을 닮아가고, 풍경은 차곡차곡 감정의 앨범 속으로 들어온다. 남파랑길 65코스는 그렇게,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 일인지 조용히 말해주는 감성 도보길이다.
감성으로 걷는 구간 속 장면들
도남관광단지를 출발해 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처음 마주하는 것은 바다다. 이 바다는 그 어떤 소리보다 깊은 침묵으로 나를 맞이한다. 일렁이는 물빛, 낮게 흐르는 바람, 그리고 파도 위로 반짝이는 햇살은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게 된다. 걷는 이가 많지 않은 이 길에서, 바다는 조용히 나와 대화를 나눈다. “지금 괜찮아, 그냥 그렇게 천천히 가도 돼.” 그런 말을 해주는 듯하다.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해안 산책길과 마주하게 된다. 걷는 길 옆으로 낡은 방파제가 이어지고, 그 위에는 고등어를 말리는 어르신의 손길이 느리게 움직이고 있다. 그 움직임조차 이곳에선 풍경이다. 어촌의 정취는 어떤 설명보다 진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말이 없어도, 시끄럽지 않아도, 이곳은 삶의 흔적과 이야기가 켜켜이 쌓인 감성의 공간이다.
잠시 길을 벗어나 미륵산 자락 아래 마을을 거닐다 보면, 오래된 골목길이 이어진다. 벽화가 그려진 담벼락, 수세미 덩굴이 자란 낮은 담, 골목 끝에 놓인 바다를 바라보는 나무 의자 하나. 이 풍경은 누군가의 기억 속에 있었던, 아주 따뜻한 오후를 닮았다.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그 의자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면, 마음속에 있던 말들이 스르르 녹아내린다. 말하지 않아도 괜찮은, 그런 시간을 이곳에서 경험할 수 있다.
코스 중후반부에는 죽림해안누리길이 등장한다. 이 구간은 이른 아침이나 해 질 무렵 걸을 때, 감성의 정점을 찍는다. 바다와 나란히 걷는 이 길은 특히 해가 지는 시간대에 황금빛 물결이 길 전체를 감싼다. 저물어 가는 해를 바라보며 걷는 그 시간, 이 길은 더 이상 지도 위의 경로가 아니라, 나 자신을 향해 나아가는 감정의 선이 된다. 햇살은 물 위에 부서지고, 나의 감정도 그 속에 조용히 섞인다. 그렇게 이 길은, 내 마음을 천천히 덮어주는 담요 같은 공간이 된다.
걷고 나서야 비로소 들리는 내 마음의 소리
남파랑길 65코스는 ‘풍경이 예뻐서’ 좋은 길이 아니다. 이 길은 오히려, 걷는 이의 마음을 천천히 들여다보게 만드는 감정의 길이다. 사람마다 같은 풍경 속에서도 각기 다른 감정을 느끼고, 각자만의 이야기를 담아내게 된다. 그리고 그 차분한 감정들은 걸음을 멈춘 순간, 비로소 온전히 피어난다.길 끝에 다다를 즈음, 나는 더 이상 무엇을 찾아 걷고 있지 않았다. 풍경을 찍기 위해 휴대폰을 들지 않았고, 시간을 확인하지도 않았다. 그저 걷는 그 자체가 위로였고, 바람과 햇살이 감정의 언어가 되어 나를 다독였다. 이 길을 걷는 동안, 나는 어떤 위대한 결론을 내린 것도 아니고, 삶이 크게 달라진 것도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주 작고 조용한 변화가 마음 깊은 곳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남파랑길 65코스는 화려하지 않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오래 남는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이 길 위에서, 나는 나를 깊이 기억하게 된다. 그런 길이 있다. 말없이 감정을 꺼내 주고, 조용히 등을 토닥여주는 길. 이 코스가 바로 그런 길이다. 걷는 내내 나는 누군가의 감정에 머물다 나왔고, 결국 내 감정도 이 길 위에 남겨두고 돌아왔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가끔, 마음이 번잡해지면 이 길의 어느 풍경이 떠오른다. 그리고 문득 그립다. 다시 걷고 싶다. 다시 머물고 싶다. 그런 마음이 드는 길. 그것이 바로, 남파랑길 65코스가 가진 감성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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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파랑길 65코스, 걷는 마음이 머무는 길 위의 감성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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