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파랑길 68코스는 경남 통영 도남동에서 달아공원까지 약 11.4km에 이르는 해안 도보길이다. 특별한 목적 없이 걷기만 해도 좋을 정도로 경사가 완만하고, 시야를 가리지 않는 바다 풍경이 걷는 이의 마음을 가볍게 한다. 걷는 동안 복잡한 계획도, 철학적인 사색도 필요 없다. 단지 리듬대로 발을 옮기고, 바람을 맞으며, 눈앞에 펼쳐지는 푸른 해안을 따라가면 된다. 여행보다 걷기, 목적보다 과정에 집중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 코스는 더없이 잘 맞는 길이다.
걷는다는 행위 자체로 충분한 하루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목적을 좇는다. 어느 곳에 도착하기 위해 이동하고, 어떤 결과를 위해 애쓰고, 정해진 시간 안에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는 부담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런데 문득, 목적 없이 걷는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하루가 있다면 어떨까? 아무 계획 없이, 그저 발이 닿는 대로, 한 걸음 한 걸음 바다를 따라 걷는 일. 남파랑길 68코스는 그런 ‘단순한 걷기’의 즐거움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길이다.
이 코스는 경남 통영의 도남동에서 시작해 달아공원까지 이어지는 약 11.4km의 거리로 구성되어 있다. 멀지 않지만 짧지도 않은, 적당히 걷기 좋은 길이다. 오르막도 거의 없고, 걷는 내내 시야를 가리는 요소도 많지 않다. 눈앞에는 바다가 펼쳐져 있고, 가끔은 낮은 언덕과 마을이 지나가며 리듬을 바꿔줄 뿐이다. 이 코스에서 중요한 건 ‘어디로 가는가’보다 ‘어떻게 걷는가’다.
특별한 명소를 기대하기보다는, 매 순간 작은 감각을 즐기며 걷는 것이다. 발밑의 흙길이 주는 폭신함, 옆으로 지나가는 고요한 파도 소리, 어느 순간 바람이 얼굴을 스치는 그 느낌. 그것만으로도 걷는 시간은 충분히 의미 있어진다. 관광지를 돌기 위한 목적도, 사진을 남기기 위한 의무도 없는 이 길 위에서 우리는 비로소 ‘나를 위한 걷기’가 무엇인지 경험하게 된다.
걷는 도중에는 문득 떠오르는 생각도 사라지고, 일정에 대한 스트레스도 흐려진다. 사람들은 흔히 여행을 ‘탈출’이라고 말하지만, 68코스에서의 걷기는 오히려 ‘회복’에 가깝다. 무언가를 채우기보다는, 비워내는 시간. 그래서 이 길은 함께 걷기보다 혼자, 또는 말이 적은 사람과 함께 걷기에 더 적합하다. 말없이 옆에 있는 사람과도 충분히 소통할 수 있을 만큼 이 길은 조용하고 평온하다.
무심코 걸었지만 돌아보면 그 걷기의 시간은 꽤 충만하다. 멀리 간 것도 아닌데 마음은 가볍고, 발걸음은 개운하다. 복잡한 설명 없이도 누군가에게 “좋은 길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곳. 남파랑길 68코스는 그렇게 ‘걷는 것 자체가 여행이 되는 길’이다.
길이 주는 리듬, 풍경이 만드는 쉼
남파랑길 68코스의 시작점인 도남동은 이전 코스의 감성을 조용히 이어주는 구간이다. 이곳은 통영 케이블카나 루지 등 활기찬 관광지가 있는 구역이지만, 코스는 관광 중심지를 살짝 벗어나 조용한 바닷가 골목으로 접어든다. 초반은 잔잔한 항구와 바다가 나란히 이어지며 걷는 리듬을 만들어낸다. 정해진 페이스 없이 마음 가는 대로 걸을 수 있다는 점이 이 코스의 가장 큰 장점이다.
길은 자연스럽게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뻗는다. 자전거 도로와 함께 정비된 일부 구간은 걷기에 매우 쾌적하며, 무릎에 부담이 가지 않을 정도의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해안을 끼고 걷는 동안은 별다른 풍경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천천히 보면 늘 다른 요소들이 시선을 끈다. 바다 위를 미끄러지듯 지나가는 어선,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 불쑥 나타나는 바위섬 하나. 그 평범함 속에서 특별함을 찾는 재미가 있다.
중간쯤에 이르면 길은 약간의 곡선을 그리며 내륙과 해안을 오간다. 이때 나무가 만든 그늘 아래로 들어서게 되는데, 이 순간이 꽤 근사하다. 걸음을 멈추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쉴 수 있다. 따로 앉지 않아도, 그늘 하나로 충분히 쉼이 되는 구간이다. 사람의 손길이 지나치지 않아서 더 자연스럽고, 도로와 멀리 떨어져 있어 더 조용하다.
후반부에 접어들면 길은 다시 해안 쪽으로 방향을 튼다. 멀리 달아공원의 조형물이 보이고, 바다와 섬들이 만들어낸 풍경이 점점 가까워진다. 여기부터는 걸음을 늦추고 주변을 음미하기에 좋다. 시선이 자꾸 멈추고, 마음은 어느새 풍경 속에 녹아든다. 굳이 사진을 찍지 않아도 기억에 오래 남을 장면들이다. 걷기의 끝이 가까워지지만, 마치 더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구간이기도 하다.
마침내 도착하는 달아공원. 전망대에서는 통영의 바다와 섬들이 탁 트인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코스의 마지막 지점이지만, 오히려 시작점처럼 느껴진다. 다시 한 번 걷고 싶고, 다시 천천히 반복하고 싶은 길. 이곳은 목적지가 아닌, 또 다른 출발선처럼 다가온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하루
남파랑길 68코스는 복잡한 생각을 비워내고, ‘그냥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하루를 만들어준다. 이 길에서의 걷기는 어떤 의미를 붙이지 않아도 괜찮다. 특별한 목표나 성취가 없어도 된다. 걸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마음 한쪽이 충전되는, 그런 묘한 기분이 이 코스의 가장 큰 매력이다.
많은 길들이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에 집중한다면, 이 길은 ‘어떻게 걷게 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소란스럽지 않은 풍경, 부드럽게 이어지는 길, 간섭하지 않는 공간. 그 모든 요소가 자연스럽게 걷는 이를 배려한다. 그러므로 이 코스를 가장 잘 즐기는 방법은 ‘의도적으로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걸을수록 더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
무심코 걷다가도 문득 마음이 편안해지고, 어떤 복잡한 감정들이 정리되는 순간이 온다. 혼자여도 좋고, 말이 없는 사람과 함께여도 좋다. 무엇보다도, 이 길에서는 ‘잘 걷고 있다’는 느낌 하나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결국 삶의 많은 문제는 걷고 있는 도중에 풀리기도 하고, 멈춰 서 있을 때 정리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은 늘 걷는 동안에 일어난다.
남파랑길 68코스는 누군가에게 화려한 코스는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순하게 걷는 것에서 기쁨을 느끼는 이들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길이 될 것이다. 목적 없는 걷기, 생각 없는 움직임. 때론 그것이 가장 진한 회복이 된다는 걸 이 길은 조용히, 그리고 확실하게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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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파랑길 68코스, 아무 생각 없이 걷기 좋은 바다 옆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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