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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고도에서 땅끝까지, 한반도의 끝자락을 걷는 남파랑길 90코스

by 사부작거리누 2025.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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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의 끝, 그 걷기 여정의 상징성을 담다

남파랑길 90코스는 그 자체로 걷기 여행의 종점이자 출발점이라는 이중적 상징성을 가진 구간이다. 출발지는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에 위치한 미황사 천왕문, 도착지는 우리나라 최남단으로 잘 알려진 땅끝마을의 땅끝탑이다. 약 13km가량의 이 구간은 단순한 트레킹 코스를 넘어, 걷는 이의 내면에 완주의 성취감과 출발의 다짐을 동시에 새기는 여정으로 해석될 수 있다.
특히 이 코스는 ‘달마산 달마고도’라는 독특한 역사·생태 문화길을 따라 이어진다. ‘고도’라는 명칭은 단순한 등산로가 아닌, 과거 수행자들이 걸었던 순례길의 성격을 띤다. 과거의 고승들이 걸었던 이 숲길은 현재에도 ‘달마고도 힐링축제’를 통해 많은 이들의 치유 공간이 되고 있으며, 실제로 걸어보면 길 자체가 단순한 산길이 아닌 사유와 내면 성찰을 유도하는 분위기를 풍긴다.
미황사에서 출발해 초입을 지나면, 이내 고요한 숲길과 계곡, 그리고 드문드문 나타나는 기암괴석 지형이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중간중간 산 중턱에서 멀리 남해안의 드넓은 수평선이 시야를 가득 메우며, 이 풍경은 여타 산악 트레킹에서 느낄 수 없는 해안 고도 트레킹의 묘미를 선사한다.
남파랑길의 북쪽 시점인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시작해 여기까지 도달한 사람에게 이 길은 마침표가 되며, 처음 이 길에 입문하는 이들에게는 새로운 출발선이 된다. 걷는 내내 사람은 자연과 함께 ‘어디서 왔는가’보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기암괴석과 사찰, 그리고 땅끝이 전하는 시간의 깊이

코스의 중심부에 들어서면, 달마산의 대표 사찰 미황사와 도솔암이 이어지는 구간에 진입하게 된다. 미황사는 신라시대에 창건된 고찰로, 전통적인 승탑과 석등, 단아한 전각이 절제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경내를 걷다 보면, 일상에서 벗어나 세속의 소음이 멀어지는 감각이 선명해진다.
이어지는 도솔암은 절벽 위에 자리한 암자 형식의 사찰로, 이곳에서는 달마산 능선과 남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경관이 펼쳐진다. 암자 뒤로 펼쳐지는 기암괴석과 송림, 그리고 그 너머의 바다는 이 구간의 백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 코스는 점차 남쪽으로 내려가며 해남의 상징, 땅끝전망대와 땅끝탑을 향하게 된다. 땅끝전망대는 해발 160m의 위치에 자리한 데크형 구조물로, 남해의 수평선 너머 완도, 제주도, 심지어 날씨가 맑을 땐 멀리 일본 쓰시마섬까지 조망이 가능하다. 전망대 운영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입장료는 성인 기준 1,000원으로 저렴한 편이다.
특히 이 구간에서는 ‘땅끝모노레일’이라는 체험 요소가 더해져 있다. 땅끝마을에서 출발해 전망대까지 왕복할 수 있는 이 모노레일은, 도보로는 접근이 어려운 고령자나 어린이를 동반한 여행자에게도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왕복 5,000원, 편도 3,500원으로 합리적인 가격이며, 이 또한 남파랑길의 ‘모두를 위한 길’이라는 철학과 일치한다.
이 모든 여정의 끝에는 ‘한반도의 끝’이라 새겨진 땅끝비석이 기다리고 있다. 많은 이들이 이 비석 앞에서 사진을 찍고, 긴 여정을 자축하며 혹은 앞으로의 출발을 다짐한다. 그 어떤 SNS 포스팅보다도, 이 자리에서 느끼는 삶의 실감과 체험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걷는 이에게 주는 마침표, 혹은 새로운 출발선

남파랑길 90코스는 ‘국토 최남단’이라는 지리적 상징성을 넘어, 정서적 끝과 시작의 접점이 되는 장소다. 이 코스를 걷기 위해서는 먼저 **교통편의 확인이 중요하다.** 미황사 입구까지는 해남 시내버스터미널에서 ‘산정행’ 버스를 타고 하차해야 하며, 버스 배차간격이 길기 때문에 하루 일정에 여유를 두는 것이 현명하다. 종점인 땅끝탑에서도 사구미 방면 버스를 타고 해남종합버스터미널로 복귀할 수 있다.
전체 구간은 걷기 안전성이 비교적 높으며, 등산로보다는 잘 정비된 순례길, 둘레길의 성격이 짙다. 하지만 달마산 능선 구간과 일부 오르막 구간은 체력 소모가 상당하므로 트레킹화를 착용하고, 자외선 차단제, 물, 간단한 간식, 비상약 등을 반드시 지참해야 한다. 가을철에는 ‘달마고도 힐링축제’가 개최되어, 지역 특산물 장터와 야외 체험이 함께 열리므로 축제 시기에 맞춰 방문하면 더욱 풍성한 여행이 가능하다.
이 길은 단순히 '한반도의 끝'을 찍기 위한 목적지만이 아니다. 몸이 아닌 마음이 여행의 끝에 닿는 시간, 혹은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출발할 준비를 하는 성찰의 공간이기도 하다. 끝에 서보아야 비로소 출발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땅끝에 도착한 발걸음은 결국 또 다른 방향의 시작을 향해 움직이게 되어 있다.
그래서 남파랑길 90코스는 단순한 종점이 아니라, 삶의 사이클을 정리하고 다시 조율하는 ‘의식’과도 같은 여정이다. 바다가 말을 걸고, 산이 응답하고, 바람이 속삭이는 그 길 위에서 걷는 사람은 더 이상 단순한 여행자가 아니다. 그는 이 땅 위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 증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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