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해변과 소나무 숲길에서 마주하는 평온
걷는다는 것은 단지 몸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는 행위이기도 하다. 특히 도시의 소음과 빠른 일상 속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자신을 돌아보고 싶은 순간, ‘길’은 언제나 훌륭한 치유의 공간이 되어준다.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도에 위치한 서해랑길 25코스는 바로 그러한 길이다. 삼봉해수욕장 주차장에서 시작해 밧개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약 17.3km의 여정은 도보 기준 약 6시간이 소요되며, 단순한 체력 소모 이상의 정서적 회복을 제공하는 코스로 알려져 있다. 이 길은 안면도 해안선을 따라 이어지며, 때로는 조용한 해변을 걷고, 때로는 깊고 고요한 소나무 숲길을 지난다. 이러한 경관의 조화는 걷는 이로 하여금 자연의 품에 안긴 듯한 안정감을 선사하며, 이내 마음속까지 맑아지는 느낌을 경험하게 만든다.
출발지인 삼봉해수욕장은 비교적 덜 알려진 해변으로, 여름철에도 관광객이 적어 조용히 걷기 좋은 시작점이다. 세 개의 바위섬이 바다 위에 떠 있는 듯 보이는 독특한 지형은 시각적으로도 인상적이며, 서해의 특유의 잔잔한 물결과 함께 걷는 발걸음을 부드럽게 만든다. 그 후 이어지는 두야리 솔밭길은 이 코스의 핵심 구간이라 할 수 있다. 키 큰 소나무들이 병풍처럼 길을 둘러싸고 있으며, 걷는 이의 발밑에는 부드러운 솔잎이 쌓여 있어 도보의 피로를 덜어준다. 솔향 가득한 숲길은 맑은 공기와 함께 피로한 심신에 안정을 가져다주며, 마치 한 폭의 수묵화 속을 걷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길을 걷다 보면 자연스레 속도가 느려지고, 걷는 이의 호흡마저 부드러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특히 25코스는 사람의 손이 크게 닿지 않은 자연 그 자체가 그대로 보존된 풍경이 많다. 인공적인 구조물이 많지 않기 때문에 인간 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 ‘자연의 일부로 존재하는 나’를 느끼게 한다. 길 곳곳에서 마주하는 이름 모를 풀과 나무, 때로는 작은 바위 틈에 피어난 들꽃 하나까지도 감상의 대상이 된다. 현대인의 감각은 때때로 너무 많은 자극에 길들여져 있지만, 이 코스를 걷는 동안에는 그 감각이 서서히 정돈되고 본래의 감수성으로 되돌아온다. 삼봉에서 밧개까지 이어지는 여정은 그렇게, 단지 물리적인 ‘거리’를 걷는 것이 아닌 정신적 ‘거리’를 되짚는 시간이 된다.
자연이 건네는 온기 속에서 진짜 나를 마주하다
서해랑길 25코스의 본격적인 힐링 구간은 꽃지해수욕장을 지나 안면도 자연휴양림을 경유하는 중반부부터 진가를 발휘한다. 꽃지해변은 이미 많은 이들에게 낙조 명소로 알려져 있지만, 도보로 이곳을 천천히 통과하는 과정은 그 이상의 감동을 제공한다. 붉게 물든 하늘과 서서히 물러나는 바다의 색감은 걷는 이를 멈추게 만들 만큼 황홀하다. 잠시 발을 멈추고 바다를 바라보며 깊은 호흡을 할 때, 그동안 쌓여 있던 생각과 스트레스들이 천천히 정리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걷는 여행의 진정한 힐링은 어쩌면 바로 이런 순간들에서 오는지도 모른다.
이후 안면도 자연휴양림으로 이어지는 구간은 인위적인 구조물이 거의 없는 원시림에 가까운 산책로다. 이 숲길은 수십 년 된 소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어 그늘이 깊고 공기가 맑다. 아침 일찍 걸으면 이슬 머금은 숲의 향이 더욱 짙게 퍼지고, 정오 무렵에는 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이 반짝이는 숲 속 길을 만들어낸다. 자연휴양림은 원래 숙박시설과 체험 프로그램 등으로 운영되지만, 서해랑길을 걷는 이들에게는 자연과 가장 가까이 맞닿을 수 있는 힐링 공간으로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다. 길을 걷다 잠시 휴식할 수 있는 벤치도 곳곳에 마련되어 있어, 짧게나마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사람은 원래 자연 속에서 살아가던 존재이기에, 자연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본연의 감각이 회복된다. 서해랑길 25코스는 도시에서 잊고 살던 그 감각을 다시 되찾게 해준다. 스마트폰을 꺼내지 않고도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으며, 주변의 소리에 집중하다 보면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도 귀 기울이게 된다. 숲과 바다, 바람과 향기, 고요함과 생동감이 공존하는 이 길은 힐링의 정의를 다시 쓰는 공간이다. 정신적 번아웃이나 육체적 피로에 지친 사람들에게 이 코스는 '자연이 건네는 위로'이자, '침묵 속의 대화'가 이루어지는 길로 기억될 것이다.
바다와 숲, 그리고 자신에게 주는 가장 조용한 선물
걷는 동안 문득 ‘이 길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서해랑길 25코스를 걷는 여정이 바로 그러하다. 코스의 마지막인 밧개해수욕장에 다다르면, 이 여정이 어느덧 끝을 향하고 있다는 아쉬움이 엄습해 온다. 밧개해수욕장은 소박한 어촌 마을의 풍경을 간직한 채 조용히 여행자를 맞이한다. 해변에 도착해 잠시 앉아 바라보는 서해의 수평선은 하루의 마무리에 더없이 어울리는 장면이며, 도보의 마지막 지점을 환히 밝혀주는 듯한 서쪽 하늘의 노을은 자연이 여행자에게 보내는 작별 인사처럼 느껴진다.
사람마다 힐링의 방식은 다르지만, 자연과 함께하는 걷기야말로 그 보편적인 해답이 될 수 있다. 특히 이 길은 소음이 없고, 인파가 적으며, 상업적 요소가 거의 없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위로를 준다.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환경, 생각이 멈추고 감정이 흘러가는 시간, 그리고 어느 순간 ‘비워졌구나’ 하고 느끼게 되는 감정의 여백이 이 길에는 존재한다. 그것은 값비싼 여행 상품이나 트렌디한 장소에서 결코 얻을 수 없는 깊은 치유의 경험이다. 힐링이란 감탄을 이끌어내는 장면보다는 마음을 조용히 덮어주는 ‘공기 같은 공간’에서 오는 것임을, 이 코스를 통해 실감하게 된다.
서해랑길 25코스는 하루면 걸을 수 있는 길이다. 그러나 걷고 나서 남는 여운은 결코 하루치가 아니다. 어느 날 문득 소나무 향기가 그리워질 때, 해변의 파도 소리가 귀에 맴돌 때, 꽃지해변의 낙조가 눈앞에 아른거릴 때, 우리는 이 길을 다시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여행의 기억이 아니라, 마음속 어딘가에 남겨진 조용한 안식처로 자리 잡을 것이다. 한 걸음 한 걸음 쌓아 올린 치유의 여정, 그것이 바로 서해랑길 25코스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가장 소중한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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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숲길이 건네는 위로, 서해랑길 25코스에서 걷는 힐링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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