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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랑길 54코스, 혼자 걷기 좋은 고요한 사색의 길

by 사부작거리누 2025.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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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보령시 대천해수욕장에서 시작해 송학사거리까지 이어지는 서해랑길 54코스는 약 15.5km의 도보 여정이다. 바다와 숲, 시골 마을이 조용히 어우러진 이 길은 특별한 이벤트나 풍경 없이도, 오롯이 ‘걷는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북적임 없는 평온한 길 위에서, 일상에 묻어둔 감정을 정리하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다. 혼자 걷기에 부담 없고, 사색에 잠기기에 완벽한 길로 추천할 만하다.

떠들썩한 마음을 잠재우는 조용한 발걸음

일상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자주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있을까? 바쁘다는 이유로, 외롭다는 핑계로, 혹은 정적이 주는 불안함 때문에 우리는 자꾸만 누군가와 함께 있으려 하고, 소음을 가까이 둔다. 하지만 진정한 쉼은 ‘함께 있음’이 아니라 ‘홀로 있음’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서해랑길 54코스는 삶의 중심에서 벗어나 조용히 나와 마주할 수 있는 이상적인 공간이다.
54코스는 충남 보령시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대천해수욕장에서 시작해 송학사거리까지 이어지는 도보 코스다. 시작 지점인 대천해수욕장은 여름이면 사람들로 북적이지만, 비수기에는 비교적 한적한 풍경을 보인다. 이곳을 떠나 길을 따라 걷기 시작하면 곧 북적임이 줄어들고, 어느 순간부터는 발걸음 소리만이 귓가를 맴돈다. 그렇게 이 길은 걷는 사람의 주변을 차츰 비워나간다.
이 코스의 진가는 ‘특별한 것이 없다는 데’ 있다. 도심의 화려함이나 이국적인 풍경이 있는 것도 아니고, 유명한 관광 명소가 있는 것도 아니다. 대신 이 길은 하루 종일 걸어도 마음이 지치지 않을 만큼의 ‘적당한 무채색’으로 구성돼 있다. 그 어떤 자극도 없는 풍경은 오히려 감정을 천천히 가라앉히고, 생각을 정돈하게 만든다. 우리가 정말로 필요한 쉼이란 바로 이런 고요 속에서 찾아온다.
54코스는 혼자 걷기에 부담이 없다. 평탄한 구간이 많고, 대부분의 길은 자연 지형을 살려 조성되어 있어 걷는 동안 육체적 피로가 심하지 않다. 그리고 그만큼 감정과 생각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걷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오래된 기억이 떠오르기도 하고, 최근 고민했던 일들이 조금 더 가벼워지기도 한다. 그것은 누구에게 털어놓지 않아도 되는, ‘나만의 대화’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이 길은 그래서 특별한 목적 없이 떠나도 좋다. 아무도 만나지 않아도, 특별히 볼 것이 없어도 괜찮다. 오히려 그런 공백이 주는 자유로움이야말로 이 길의 가장 큰 선물이다. 서해랑길 54코스는 그렇게 혼자 걷는 사람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을 주며, 그 속에서 서서히 감정을 회복하게 한다. 하루쯤은 나를 위해, 오롯이 걷기만 해도 괜찮다는 것. 이 길은 그걸 온몸으로 말해준다.

무심한 풍경 속에서 마주하는 내면의 소리

서해랑길 54코스의 출발점인 **대천해수욕장**은 흔히 여름의 활기찬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지만, 조용한 계절에 이곳을 찾으면 전혀 다른 분위기를 체감할 수 있다. 해변은 쓸쓸할 정도로 조용하고, 바다 소리는 오히려 묵직하게 가슴을 울린다. 도보는 바닷가를 등지고 내륙 쪽으로 향하면서 시작되며, 이내 일상의 소음에서 벗어난 들판과 마을길이 이어진다. 초반에는 탁 트인 도로를 따라 걷지만, 이내 논과 밭이 펼쳐지는 전형적인 시골 풍경으로 전환된다.
이 코스는 전반적으로 평탄하지만 단조롭지는 않다. 때로는 소나무 숲의 그림자가 길을 덮고, 때로는 논두렁 사이의 외길이 오롯이 걷는 사람을 인도한다. 바람은 늘 일정한 속도로 불며, 간혹 이름 모를 새들의 울음소리가 조용한 길에 울림을 더한다. 주변에 눈에 띄는 자극이 없기 때문에, 걷는 이는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집중하게 된다. 걷는 속도는 느려지고, 호흡은 고르게 되며, 사고의 흐름도 차분해진다.
중간 지점 근처에는 내항리 일대의 한적한 숲길이 펼쳐진다. 이 구간은 마치 세상과 단절된 듯한 느낌을 준다. 나무 사이로 빛이 어슴푸레 떨어지고, 바람은 잎사귀를 간질이며 스쳐간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걷다 보면 생각은 점점 깊어지고, 평소 무심히 지나쳤던 감정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길 위에 선 나는, 지금 이 순간 누구의 시선도 의식할 필요 없이 그저 나로서 존재하는 중이다.
후반부로 향할수록 길은 다시 평야 지대로 접어든다. 바다가 다시 가까워지는 느낌은 들지 않지만, 공기 중에 약간의 염분이 감돌고, 갈대밭 사이로 낮은 풍경이 펼쳐진다. 이 구간에서는 혼자 걸어가는 시간이 유독 길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 고요함이야말로 진짜 사색을 가능하게 한다. 이때쯤 되면 많은 이들이 ‘무엇을 위해 이 길을 걷고 있었는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어떤 답도 필요 없지만, 그 질문 자체가 중요한 시간이다.
길의 마지막 지점인 송학사거리에 도달하면, 조용했던 여정이 다시 현실로 이어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차가 오가고, 사람들의 움직임이 다시 나타나며 길은 점점 활기를 띠게 된다. 하지만 걷는 이의 마음은 이미 조용한 풍경 속에서 충분히 가라앉아 있다. 이 여정이 특별했던 것은, 누군가와의 대화도, 멋진 풍경도 아닌 ‘내 안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이 길이 주는 진짜 가치다.

조용한 길 위에서 발견한 나의 감정

서해랑길 54코스는 단순히 걷기 위한 길이 아니다. 그보다는 복잡한 삶에서 잠시 벗어나, 조용히 나와 마주하는 시간을 제공하는 하나의 공간이다. 화려한 볼거리나 목적지 없는 이 길은 오히려 그래서 더 특별하다. 누구에게 보여줄 필요도 없이, 어디에 도착하지 않아도 되며, 그저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면 된다. 그런 걸음걸이야말로 진짜 힐링이고, 진짜 여행이라 할 수 있다.
혼자 걷는 길은 두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고요함을 두려워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순간,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무언가가 조금씩 정돈되기 시작한다. 기억이 떠오르고, 감정이 흐르며, 어떤 날에는 눈물 없이도 슬픔이 해소되고, 어떤 날에는 말없이도 위로가 찾아온다. 그 모든 것이 걷는 이의 속도대로, 리듬대로, 천천히 스며든다. 54코스는 그런 시간을 가만히 받아주는 공간이다.
현대인의 삶은 끊임없이 누군가와 연결되고, 비교되고, 이야기되고 있다. 그런 삶 속에서 가끔은 조용히 단절되어도 괜찮다는 것을 이 길은 말해준다. 혼자 걷는다고 외로운 것이 아니라, 혼자 걸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단순히 걷는 여정 이상의 무언가를 남긴다. 그것은 앞으로의 삶을 조금 더 단단하게 해줄 내면의 뿌리 같은 것이다.
서해랑길 54코스는 말이 없다. 하지만 그 침묵은 무게 있고 진실하다. 한 걸음, 또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우리는 조금 더 나 자신에게 가까워진다. 그러니 만약 오늘 당신이 조용한 위로가 필요하다면, 누군가의 응원이 아닌 스스로의 응답을 듣고 싶다면—이 길을 걸어보라. 바람과 나무, 흙과 햇살이 당신 곁을 걸어줄 것이다. 아무 말 없이도 충분한 사색의 길 위에서, 우리는 결국 ‘나’를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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