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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랑길 64코스, 시간과 풍경이 공존하는 마을길을 걷다

by 사부작거리누 2025.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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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대천항에서 남포면 궁촌리까지 이어지는 서해랑길 64코스는 약 15.1km 구간으로, 어항과 농촌, 간척지와 하천, 그리고 오래된 마을의 정취가 어우러진 여정이다. 길을 걷다 보면 바닷바람과 함께 전해지는 포구의 숨결, 농촌의 고요한 정적, 오래된 마을 담장 너머로 스며드는 시간의 흔적을 마주하게 된다. 이 코스는 단순한 풍경 이상의 감정을 전하며, ‘지나가는 길’이 아닌 ‘머무는 여정’으로 깊이 각인된다.

지나간 시간 위를 걷는 일, 서해 마을이 들려주는 이야기

여행은 언제나 새로움을 찾는 여정이지만, 때로는 잊힌 것들을 다시 만나는 방식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떠나는 도보 여행이란 단순한 풍경 소비가 아니라, 삶의 조각들을 천천히 곱씹어보는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어떨까. 그런 점에서 서해랑길 64코스는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길이다. 이 길은 현재를 걷는 우리의 발걸음이 과거의 기억들과 조용히 마주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서해랑길 64코스는 충청남도 보령시 신흑동 대천항에서 시작해 남포면 궁촌리까지 약 15.1km 이어지는 여정이다. 처음에는 바다를 품은 항구에서 출발하지만, 이내 갯벌과 농촌, 하천과 간척지, 오래된 마을 담장으로 풍경이 바뀌어 간다. 해안의 풍경만을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의외의 전개일 수 있지만, 그 다채로움이 이 코스의 진짜 매력이다.
걷다 보면 느끼게 된다. 이 길은 누군가의 삶터이자, 우리가 지나쳐온 시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공간이라는 것을. 길가에 핀 들꽃 한 송이, 오래된 가옥의 기와, 낡은 우편함과 문풍지 너머로 스며 나오는 마을의 공기는 그 자체로 한 편의 시간 여행을 떠나는 듯한 감정을 준다. 화려하진 않지만, 그래서 더 오래 마음에 남는 풍경.
이 코스는 도시의 시간과 다른 속도로 흐른다. 자동차 소리보다 자전거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익숙하고, 스마트폰 알림보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소리가 더 가까운 길. 우리가 익숙하게 살아가는 현재의 시간감각과는 다른, 느린 감정이 이 길에는 살아 있다. 그리고 그 느린 감정은 걷는 동안 천천히, 그러나 깊이 우리의 감각을 깨운다.
바닷가 마을과 농촌, 그리고 간척지 사이를 오가는 길 위에서 우리는 단지 자연만을 보는 것이 아니다. 그 풍경 속에서 과거를 살아낸 이들의 삶을 상상하고, 그 속에서 나 자신의 현재를 되돌아보게 된다. 서해랑길 64코스는 그런 식으로 ‘풍경을 걷는 길’이 아니라 ‘시간을 함께 걷는 길’이 된다.

항구와 들판, 마을을 잇는 여정 위의 풍경들

서해랑길 64코스의 시작점은 **대천항**이다. 보령시를 대표하는 항구 중 하나로, 아침이면 어민들의 작업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관광객들의 발길도 잦은 곳이다. 항구 특유의 활기와 신선한 해풍을 느끼며 출발하는 길은 걷는 이의 기대를 한껏 끌어올린다. 하지만 그 활기는 곧 고요함으로 전환된다. 항구를 조금만 벗어나면 복잡했던 풍경은 서서히 간결해지며, 길은 소박한 마을과 평온한 들판을 향해 이어진다.
코스 중간부로 접어들면 남포간척지가 펼쳐진다. 간척이라는 인간의 노력과 자연이 만나는 이 공간은, 다른 둘레길에서는 보기 힘든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정돈된 수로와 논,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하늘 아래의 농촌 풍경은 도시의 삭막함과는 전혀 다른 감각을 선물한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풍경은 걷는 이의 감정선에도 자연스러운 영향을 준다. 봄에는 연두빛 들녘이, 가을엔 황금빛 논이 보는 이의 마음을 차분하게 감싼다.
이어지는 길은 소하천변 산책로와 작은 마을길을 따라 이어진다. 이 길에서 마주치는 마을들은 관광지로 개발되지 않아 원형에 가까운 옛 정취를 간직하고 있다. 사람들의 생활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이 골목들에서는 전혀 꾸밈없는 일상이 펼쳐진다. 담벼락에는 누군가의 지난 계절이 고스란히 묻어 있고, 좁은 골목에서는 마주 오는 사람과 눈인사를 나누는 따뜻한 풍경이 펼쳐진다.
또한 이 코스에는 자연생태와 사람이 만든 경계선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간척지와 소하천을 따라 이어진 논길은, 마치 인간과 자연이 타협한 결과물처럼 느껴진다. 강제적으로 만들어졌지만 시간이 흐르며 서서히 자연화된 이 공간은 ‘공존’이라는 단어의 실체를 눈앞에 보여준다.
길은 마지막으로 궁촌리로 향한다. 이곳에 도착하면 비로소 여정이 마무리되지만, 오히려 이 마을에서 느껴지는 시간의 흐름은 더 또렷하다. 오래된 집들과 텅 빈 골목, 들판 너머로 지는 해는 ‘지나온 길’을 되짚어보게 만든다. 걷는 동안 우리가 마주했던 모든 풍경은, 이곳에서 조용히 되새겨지며 깊은 인상을 남긴다.

길 위에 남겨진 시간, 마음으로 다시 읽는 풍경

서해랑길 64코스는 화려한 관광지가 아니다. 반짝이는 포토존도, 사람을 끌어모을 만한 특별한 명소도 없다. 그러나 이 길은 ‘시간’을 걷게 만든다. 항구에서 출발해 농촌과 마을을 지나며 바다와 땅, 그리고 사람의 시간이 겹쳐져 있는 풍경을 마주하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는 자연스레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그것이 바로 이 길이 가진 깊이 있는 힘이다.
이 코스를 다 걷고 나면 깨닫게 된다. 풍경은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것임을. 담벼락의 이끼, 논두렁에 앉은 새, 길가에 떨어진 낙엽 하나까지도 모두 이 길의 ‘이야기’가 된다. 우리가 걸은 건 몇 시간일지 모르지만, 그 안에는 수십 년을 살아온 사람들의 숨결과 계절을 견뎌낸 자연의 표정이 담겨 있다.
무엇보다 인상 깊은 것은 ‘현재의 내가 과거의 시간과 나란히 걸을 수 있다’는 감각이다. 이 코스는 단지 움직이는 경로가 아니라, 감정과 기억이 흐르는 시간의 축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해랑길 64코스는 여느 도보여행과는 전혀 다른 여운을 남긴다. 단지 ‘풍경이 아름다웠다’는 한 줄 평이 아니라, ‘그곳에서 나는 조용히 나를 돌아보았다’는 진심을 남기는 길.
일상에 지쳐 있는 이들에게, 혹은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흘러가 답답함을 느끼는 이들에게 이 코스는 훌륭한 쉼터가 되어줄 것이다. 느리고 조용한 길 위에서, 당신은 분명 무언가를 다시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잊고 있던 감정이든, 지나간 기억이든, 혹은 지금의 나 자신이든. 그리고 그것은 이 길을 걷기 전보다 더 단단한 ‘나’로 돌아오는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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