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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랑길 69코스, 바다와 일상이 나란히 걷는 느린 해변길

by 사부작거리누 2025.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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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랑길 69코스는 충청남도 태안군 만리포해변에서 의항출장소까지 약 15.3km를 걷는 해변 도보 코스다. 화려한 풍경보다는 파도 소리, 마을의 숨결, 그리고 조용한 해변이 이어지는 이 길은 도시의 감각을 내려놓고 천천히 걷기 좋은 길이다. 바다와 함께 걷고, 마을의 일상을 지켜보며, 자신의 속도에 맞춰 나아가는 길. 서해랑길 69코스는 여행이라기보다 ‘삶을 다시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는 특별한 하루를 선물한다.

빠름을 내려놓고, 바다의 속도에 나를 맞추는 길

누구나 한 번쯤은 바다를 따라 걸으며 아무 생각 없이 머리를 비워본 적 있을 것이다. 아무 목적도 없고, 시간도 잊은 채 그저 발걸음을 옮기는 그 순간. 그때의 감정은 설명하기 어려운 편안함으로 남는다. 서해랑길 69코스는 그런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길이다. 빠름을 당연시하는 세상에서 잠시 속도를 늦추고, 바다의 리듬에 나를 맡겨볼 수 있는 유일한 해안길. 그곳은 삶의 속도가 아니라 ‘내’ 속도로 걸을 수 있는 귀한 시간이다.
서해랑길 69코스는 충남 태안군의 대표 해변인 만리포해변에서 출발하여 의항출장소까지 약 15.3km를 걷는 여정이다. 흔히 바닷길이라 하면 탁 트인 해변을 상상하게 되지만, 이 코스는 단지 풍경에 그치지 않는다. 한적한 어촌의 일상과 들판, 소나무 숲, 그리고 방파제가 번갈아 등장하며 걷는 이에게 ‘조용한 이야깃거리’를 건넨다.
이 길의 특별함은 그 느림에 있다. 아무도 재촉하지 않고, 어디까지 가야 한다는 부담도 없다. 바다는 그저 옆에서 조용히 파도를 넘기고 있고, 마을 사람들의 삶은 거기 그대로 존재한다. 그런 풍경 속을 걷는 동안, 마음의 속도는 자연스럽게 낮아진다. 불안도, 조급함도, 걱정도, 파도처럼 멀어져 간다.
서해랑길 69코스는 특별한 목적이 없어도 좋다. 특별한 풍경을 찍지 않아도, 기록하지 않아도, 그저 조용히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길 위에서 우리는 더 많이 느끼고, 더 깊이 생각하게 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걷고 나니 마음이 달라졌다’는 말이 어울리는 그런 길. 그 길이 바로 서해랑길 69코스다.

그저 지나치는 풍경이 아닌, 스며드는 일상

코스의 시작은 **만리포해변**이다. 이름만으로도 여름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곳은, 비수기 혹은 이른 아침이면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파도가 일정한 박자로 밀려오는 고요한 백사장, 간간히 조깅하는 이들, 그리고 해변가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지역 어르신들. 이곳의 시간은 마치 멈춘 듯, 아니면 아주 느리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만리포에서 출발한 길은 서서히 마을로 스며든다. 큰 도로를 벗어나면 곧 작은 마을길과 들판, 해변 산책로가 번갈아 나타난다. 학암포, 모항항, 신진도를 거쳐 의항출장소로 이어지는 이 코스는 고요한 해안길과 바닷가 마을이 조화를 이루며 걷는 이에게 다양한 풍경을 선물한다.
길가에는 해풍에 씻긴 펜션과 소박한 주택들, 텃밭을 가꾸는 어르신들, 담벼락 너머로 고개를 내민 감나무 같은 장면이 등장한다. 그것들은 일부러 꾸민 것이 아닌, 그저 거기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그 소박함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삶이란 저렇게 자연스러운 것이었지’라는 감정이 스며든다.
중간중간 드러나는 방파제나 어항은 이 길의 분위기를 더욱 정겹게 만든다. 어민들이 작업하는 모습, 그물 너머로 보이는 갈매기 떼, 조용히 물결을 바라보는 낚시꾼 한 사람. 이 모든 풍경이 하나의 시처럼 길 위에 흘러간다. 걸으며 그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지고, 묘하게 위로받는 느낌이 든다.
특히 모항항 인근은 걷다가 잠시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작은 카페와 식당이 자리해 있어 바다를 보며 간단한 요기를 하거나, 풍경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기에 좋다. 여유가 있다면 커피 한 잔을 들고 방파제에 앉아 한참을 멍하니 있어보자. 말없이 흘러가는 파도와 바람이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길은 눈에 띄는 ‘절경’이 아닌, 삶의 조각들이 하나하나 이어진다. 한 걸음씩 걷는 동안 우리는 점점 그 풍경 속에 스며든다. 그리고 그 길 끝에서 우리는 어느새 도시의 감각을 내려놓고, 바다의 시간에 맞춰 걷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변한 것은 없지만, 나는 달라져 있었다

서해랑길 69코스를 걷는 동안, 겉으로 드러나는 사건은 거의 없다. 뚜렷한 절벽도, 감탄을 부르는 관광지도 없다. 하지만 그 조용한 시간은 우리에게 말한다. 삶이란 원래 그렇게 단순하고, 조용하며, 잔잔한 것이었음을. 바다를 따라 걷는다는 것은 단지 경치를 감상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을 천천히 비워가는 일이라는 것을.
이 길 위에서는 누구도 서두르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사람과 자연 사이에도 느슨한 여백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여백 속에서 우리는 숨을 돌릴 수 있다. 때로는 특별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오래 남는다. 화려한 여행지보다, 익숙한 바다와 마을의 풍경이 더 깊은 감동을 주기도 한다.
서해랑길 69코스는 그런 길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걷고 나면 마음이 가벼워진다. 출발지의 모습은 그대로인데, 그 길을 걸은 나는 조금 달라져 있다. 이 길이 선사한 건 ‘기억에 남는 장면’이 아니라, ‘변화된 감정’이기 때문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추고 싶은 날, 말없이 누군가의 삶을 지켜보며 조용히 걷고 싶은 날, 혹은 아무런 이유 없이 길 위에 서고 싶은 날. 서해랑길 69코스는 늘 그 자리에 있다. 조용한 바닷가 마을들 사이, 일상의 속도보다 느린 풍경 안에서, 걷는 이의 마음을 천천히 어루만지는 길.
그곳에서 우리는, 다시 ‘나’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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