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해가 완전히 떠오르기 전, 진도 용장성 앞에 섰다. 이른 새벽 공기는 묵직하면서도 투명하다. 발 아래 깔린 옛 성곽의 돌 하나, 풀잎 하나에도 오래된 시간이 스며 있다. 몇백 년 전 이 땅을 지켰던 사람들의 숨결이 아직도 이곳을 맴도는 듯했다. 이 길은 단순한 트레킹 코스가 아니다. 몽골의 침략에 맞서 끝까지 항전했던 이들의 피와 땀이 밴 길이며, 동시에 한국 전통 남화의 정수를 품은 예술의 길이기도 하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몸과 마음이 비워지고, 걷는 이의 숨결에 과거와 현재가 겹쳐진다. 서해랑길 7코스는 ‘길’이 아니라, ‘기억’이고 ‘예술’이며 ‘위로’이다.
길 위에 새겨진 역사, 숲 속에 피어난 위로
서해랑길 7코스는 단순히 아름다운 경치를 따라 걷는 길이 아니다. 이 코스는 시간의 틈새를 걷는 여정이다. 시작은 진도 군내면 용장리, ‘진도 용장성’에서 시작된다. 이곳은 고려시대, 삼별초가 몽골의 침략에 맞서 최후의 항전을 펼쳤던 유적지다. 나라의 운명이 기로에 섰던 그 시절, 배중손 장군과 병사들이 마지막 희망을 품고 이곳을 방어했던 이야기는 지금도 이 땅에 깊게 새겨져 있다.
코스는 용장성을 따라 난 산책길에서 시작해 성재고개를 넘어 첨찰산으로 향한다. 도심과 떨어진 첩첩 산중의 고개와 임도를 따라 걷다 보면, 세상의 소음이 점점 멀어진다. 눈 앞에 펼쳐지는 첩첩한 숲길, 호젓하게 이어지는 임도, 그리고 들숨마다 폐부를 맑히는 진도의 공기는 일상에 지친 심신을 말없이 어루만진다.
이 길의 종착지인 운림산방은 또 다른 감동의 무대다. 조선 말기 남화의 대가 ‘소치 허련’이 은거하며 화폭에 남도의 자연과 심상을 담아냈던 곳. 한국 회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거장들의 예술혼이 녹아 있는 산방에 다다르면, 걷는 이의 마음에도 고요한 물빛이 번진다. 역사와 자연, 예술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 이 길은 단순한 도보 코스를 넘어, ‘치유’라는 이름을 지닌 여정이다.
산과 바다, 전쟁과 예술이 공존하는 서해랑길 7코스의 매력
서해랑길 7코스의 길이는 약 10km 남짓. 짧지 않은 거리이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발걸음을 옮기게 되는 이유는 그 안에 너무도 다양한 얼굴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이 길은 ‘역사의 숨결’을 품고 있다. 코스 시작점인 용장성은 고려 후기 삼별초의 마지막 항쟁지 중 하나다. 몽고에 항전했던 배중손 장군의 정신이 깃든 이곳은, 단순한 성곽을 넘어서 민중의 생존과 저항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용장성홍보관에 들러 당시의 유물과 기록을 마주하고 나면,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화가 얼마나 값진지 새삼 실감하게 된다.
이후 이어지는 첨찰산 임도는 울창한 숲과 고요한 산세로 걷는 이에게 깊은 위안을 준다. ‘죽제산산림욕장’을 지나며 마주치는 숲길은 사계절 내내 제각기 다른 색으로 말을 건다. 여름에는 초록의 신선함으로, 가을엔 단풍의 속삭임으로, 겨울엔 눈 덮인 고요함으로, 봄엔 꽃 피는 생명력으로 걷는 이를 감싼다. 이곳에서는 길이 아닌 ‘자연’ 그 자체가 힐링의 공간이 된다.
마지막으로 운림산방에 도착하면, 이 길의 진정한 깊이를 실감하게 된다. 산자락 아래 고즈넉하게 자리한 이 예술 공간은 마치 시간의 흐름조차 멈춘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허련이 남긴 그림과 삶의 흔적이 살아 숨 쉬는 이 공간에서, 우리는 예술이 단지 표현이 아닌 ‘삶의 방식’임을 알게 된다. 이처럼 서해랑길 7코스는 역사와 예술, 그리고 자연의 조화로운 교차점 위에 놓인 길이다.
걷는다는 것, 기억을 따라 흐르는 위로의 여정
서해랑길 7코스를 걷고 난 후, 마음 한편에 묵직한 감동이 남는다. 그것은 단순한 아름다움이나 트레킹의 성취감에서 오는 감정이 아니다. 이 길은 잊혀진 역사 속 인물들의 숨결을 만나고, 무심한 자연의 품에 안겨 위로받으며, 삶을 예술로 표현한 옛 선인의 자취를 따라가는 여정이다. 결국 걷는다는 것은 ‘잊지 않기 위함’이자 ‘스스로를 회복하기 위함’임을 이 길은 조용히 말해준다.
도시의 소음과 정보의 홍수에 지친 우리에게, 서해랑길 7코스는 자연 속에서 기억을 되새기고, 예술 속에서 자신을 찾는 귀중한 시간을 선사한다. 특히 이 길은 일상의 속도와는 전혀 다른 리듬으로 걷게 만들기 때문에, 몸과 마음 모두에 정화의 시간을 안겨준다.
돌아보면, 용장성에서 시작해 운림산방에 이르는 이 길은 역사와 현재, 아픔과 치유, 침묵과 예술이 공존하는 길이었다. 짧지 않은 코스였지만, 그 어떤 여행보다 진하고 깊은 감정의 흔적을 남긴 여정이었다. 오늘 하루, 당신도 바쁜 삶을 잠시 내려놓고 이 길 위에서 천천히 자신을 걸어보는 건 어떨까. 시간은 흐르지 않고, 대신 당신의 마음만이 흐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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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의 역사와 예술이 숨 쉬는 길, 서해랑길 7코스의 고요한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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