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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걷는 길 위에서, 서해랑길 9코스에서의 사색과 치유

by 사부작거리누 2025.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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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랑길 9코스는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을 따라 펼쳐지는 해안길로, 헌복동에서 서망항까지 구불구불 이어지는 옛 오솔길을 따라 걷는 동안 서남해안 특유의 정취와 역사적인 흔적을 함께 만날 수 있는 코스입니다. 아리랑마을 관광지, 윤고산사당, 남도진성과 같은 문화유산은 걷는 이에게 사색의 시간을 안겨주며, 바다와 함께한 길 위에서 마음을 비우고 다시 채우는 특별한 치유를 경험하게 합니다.

고요한 옛길을 따라, 마음 깊은 곳으로 걷는 여정

서해랑길 9코스는 진도군 임회면 상만리 귀성삼거리에서 출발해 남동리 서망항까지 이르는 약 12km 남짓한 도보 코스입니다. 이 길은 단순한 여행의 경로가 아니라, 마치 시간의 층위를 따라 걷는 듯한 여정입니다. ‘구불구불, 오르락 내리락’이라는 말로 표현된 헌복동에서 서망까지의 해안 오솔길은, 매 순간 새로운 풍경과 생각을 품게 만드는 길입니다. 그리고 그 길 위에는 바다의 숨결과 옛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현재의 우리가 잊고 지낸 감정들이 얽혀 있습니다.
이 코스의 출발점은 비교적 한적한 곳이지만, 걷기 시작하면 곧바로 고요한 풍경 속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울창한 숲을 스치며 바다가 깜빡이고, 작은 언덕을 넘으면 다시 드넓은 수평선이 펼쳐집니다. 길의 구석구석에는 봄이면 화사하게 피어나는 야생화들이 있고, 가끔씩 들려오는 새소리와 잔잔한 파도소리가 배경음처럼 함께합니다. 도시의 소음과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그저 자연과 나란히 걷는 이 시간은 그 자체로 치유가 됩니다.
하지만 이 길의 가장 큰 힐링 요소는 풍경만이 아닙니다. 걷는 동안 마주치는 아리랑마을 관광지, 윤고산사당, 남도진성과 같은 역사적 장소들은 길 위에 존재하는 ‘시간의 조각’들입니다. 특히 아리랑마을 관광지는 진도아리랑의 정서를 고스란히 품은 공간으로, 걷는 이에게 옛 노래처럼 부드럽고도 단단한 감성을 건넵니다. 봄철이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꽃들 속에서, 진도 민속마을의 오래된 담장과 고샅길을 거닐며 우리는 현대의 바쁨이 잠시 멈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됩니다.
이처럼 서해랑길 9코스는 자연의 고요함 속에 역사와 문화, 그리고 감정이 어우러진 공간입니다. 걷는 동안 머릿속은 자연스럽게 비워지고, 마음은 어느새 깊어진 풍경과 감정에 젖어듭니다. 그리고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다 보면 어느새 내 안의 소리 없는 울림에 귀 기울이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옛길에서 만나는 역사와 삶의 흔적, 그리고 사색의 시간

서해랑길 9코스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느림’에 있습니다. 구불구불한 오솔길은 급하게 걸을 수 없습니다. 가파른 오르막을 넘으면 또 다른 풍경이 기다리고 있고, 내리막길 끝에는 다시 바다가 반겨줍니다. 이 길의 리듬은 오로지 자연이 만들어내는 것이며, 우리는 그 흐름을 따라 천천히 마음을 조율하게 됩니다. 오르내림의 반복 속에서 자연스럽게 깊은 호흡을 하게 되고, 걷는 행위 그 자체가 하나의 명상이 됩니다.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아리랑마을 관광지는, 단순한 테마파크가 아닙니다. 이곳은 진도아리랑의 멜로디가 머무는 곳이자, 진도의 민속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공간입니다. 진도아리랑체험관에서는 그 소박하고도 강렬한 노래의 울림을 직접 들어볼 수 있으며, 민속마을 골목골목을 걷다 보면 어느새 우리의 감정도 그 소리결에 실려 부드럽게 물들어갑니다. 특히 봄철이면 꽃과 나무가 뒤엉킨 길목에서, 진정한 힐링이 무엇인지 몸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길을 걷다 보면 윤고산사당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고려 말기 삼별초를 이끌고 몽골에 항쟁한 배중손 장군을 기리기 위한 사당으로, 이곳에 서면 바다를 바라보는 위치에 있던 고산둑과 장군의 흔적이 머릿속을 맴돌게 됩니다. 짧은 역사 지식이라도 이 길을 걷는 데 있어서는 깊은 감동으로 이어집니다. 살아 있는 자연의 길 위에 서 있는 조용한 사당은 마치 “기억하라”고 속삭이듯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조금 더 걸어가면 진도 남도진성이 등장합니다. 조선시대 초기에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성한 이 석성은 당시의 긴장감과 방어 전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성곽에 기대어 바다를 바라보는 순간, 과거와 현재가 한 장면 속에 포개지는 듯한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바다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이들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의 삶에도 작은 성찰의 단초를 제공해 줍니다.
이 외에도 코스 외곽에는 세월호 기억의 숲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직접 경로에 포함되진 않지만, 이 길을 걷는 이라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장소입니다. 그 안에 깃든 무게와 침묵은 이 길의 분위기를 더욱 깊게 만들어 줍니다. 걷는다는 단순한 행위를 통해, 우리는 기억과 위로, 사색과 회복이라는 복합적인 감정을 한꺼번에 마주하게 됩니다.

사색 끝의 평온, 그곳에 머무는 치유의 감정

서해랑길 9코스는 분명히 ‘풍경이 아름다운 길’입니다. 그러나 이 길이 우리에게 오래도록 기억되는 이유는 단지 경치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 길 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이야기와 감정들이 켜켜이 쌓여 있고, 그것이 걷는 이의 마음을 조용히 울립니다. 숲과 바다, 마을과 유적, 그리고 봄꽃이 피는 들녘까지—이 모든 요소가 서로를 방해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며 하나의 감성적 경험으로 다가옵니다.
우리는 가끔 너무 빠르게 살아갑니다. 해야 할 일, 책임, 계획, 그리고 시간의 압박 속에서 정작 내 마음의 속도는 잊어버린 채 달립니다. 하지만 서해랑길 9코스를 걷다 보면, 다시 ‘천천히’라는 말이 몸에 배기 시작합니다. 바다를 바라보며 멈춰서고, 이름 모를 나무에 손을 얹고, 무심코 흘러나오는 한숨조차도 위로로 바뀌는 경험. 이 길은 바로 그런 감정의 전환점을 마련해줍니다.
여정의 종착지인 서망항에 도착하면, 다시 현실로 돌아가기 전의 짧은 여운이 찾아옵니다. 항구의 바람은 여전히 짭조름하고, 어민들의 움직임은 분주합니다. 하지만 그 속에 머무는 자신은 분명히 조금 달라져 있습니다. 바다를 따라 걸으며 마음을 비웠고, 역사와 마주하며 삶을 다시 생각했으며, 자연을 통해 나를 회복했기 때문입니다.
서해랑길 9코스는 단순한 트레킹 코스가 아니라,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을 정리하며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힐링의 여정입니다. 몸과 마음이 지친 이들에게, 조용히 손을 내밀며 “잠시 쉬어가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길. 바다와 함께 걷는 동안, 진정한 나를 되찾는 감동을 느끼고 싶다면 이 길을 추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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