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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에서 해남까지, 달마산의 품에 안기다 – 남파랑길 89코스

by 사부작거리누 2025.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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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륙교를 건너며 남도의 경계를 잇는 길

남파랑길 89코스는 전남 완도군 군외면의 원동버스터미널을 출발해 해남군 송지면에 위치한 달마산 미황사 천왕문까지 이어지는 약 13km의 도보여행 코스다. 이 구간은 단순한 자연경관뿐 아니라, 남도의 역사, 문화, 생태, 농어촌 체험 등 다층적인 콘텐츠를 품고 있는 특별한 여정이다. 무엇보다 ‘완도와 해남’을 하나로 연결하는 상징적 통로인 완도대교를 도보로 건넌다는 점에서, 이 코스의 상징성과 독특함은 남파랑길 전체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다.
출발점인 원동리에서는 비교적 평탄한 농로를 지나며 완도군의 남단 풍경을 마주한다. 길은 서서히 완도대교를 향해 접근하고, 이윽고 발 아래에 넓게 펼쳐지는 해협과 머리 위로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도보 연륙교 체험이 시작된다. 이 다리는 1984년에 개통된 연륙교로, 길이 약 610m의 강철 구조물이며, 바다 위를 걷는 경험은 단순한 트레킹을 넘어서는 감각적 체험을 선사한다.
다리를 건너면 행정구역은 완도에서 해남으로 바뀐다. 이곳부터는 ‘삼남길’, ‘해남 달마고도’, ‘이순신길 조선수군재건로’와 같은 전통길과 스토리텔링이 결합된 구간으로 진입하게 된다. 특히 이순신 장군이 조선수군을 재건하던 시기의 흔적이 남아 있는 이 길은, 단순한 자연길이 아닌 역사의 발자취를 따르는 길로서의 의미를 더해준다.
길은 점차 해남군 송지면으로 접어들고, 달도마을 일대의 들녘과 구불구불한 숲길, 바다 냄새가 배어 있는 어촌을 지나며 걷는 이는 비로소 달마산의 정취와 마주하게 된다.

고요한 산사, 미황사와 함께하는 치유의 시간

남파랑길 89코스의 백미는 단연코 해남 달마산 기슭에 위치한 ‘미황사’로 향하는 마지막 구간이다. 이 사찰은 약 1,300년 전 신라시대에 창건된 유서 깊은 사찰로, 조용한 산세와 조화를 이루며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특히 천왕문을 통과해 사찰로 향하는 마지막 언덕길은, 마치 세속을 내려놓고 깊은 수행의 길에 들어서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미황사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 매년 수많은 이들이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통해 마음을 비우고 삶을 재정비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고즈넉한 대웅전과 오래된 기왓장, 바람소리와 새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이 공간은 속세의 시간과는 다른 리듬을 걷는 장소다.
도중에는 ‘달도테마공원’이 자리잡고 있어 잠시 들러 쉬어가기 좋다. 이곳은 농어촌의 생태환경을 테마로 조성된 체험형 공원으로, 8~9월 사이에는 개매기 체험, 갯벌 체험, 맨손 물고기 잡기 등의 이벤트가 펼쳐진다. 트레킹 중에도 이러한 농어촌 문화 체험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은 도시인들에게 신선한 경험이 될 수 있다.
달마산 자락 아래로 향하는 길은 울창한 소나무 숲과 작은 개울, 바위지대와 경사로 등 다양한 지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걷는 내내 마치 자연 속 미로를 탐험하는 듯한 재미를 안겨준다. 특히 구간 곳곳에 위험구간이 존재하기 때문에 트레킹화를 반드시 착용하고, 시간 여유를 두고 걷는 것이 좋다.

완주를 위한 팁과 준비물, 그리고 남는 것들

남파랑길 89코스를 완주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먼저, 출발지인 원동버스터미널까지는 완도공용버스터미널에서 이동이 가능하지만, 배차 간격이 길기 때문에 미리 시간표를 확인하는 것이 필수다. 도보 종료 지점인 미황사 천왕문 인근에서도 마찬가지로 해남 시내로 나가는 버스의 배차 간격이 길고, 운행 시간이 제한적이므로 귀가 교통편까지 반드시 체크해야 한다.
둘째, 코스 후반부는 편의점이나 식수 제공 시설이 없으며, 특히 미황사까지의 오르막 구간은 급격한 체력 소모를 동반한다. 따라서 충분한 수분, 간단한 간식, 개인 의약품, 자외선 차단제, 벌레 퇴치제, 우의 등을 사전에 준비해야 한다.
셋째, 이 구간은 계절에 따라 분위기가 극명하게 달라지는 코스로, 여름철에는 녹음이 짙고 축제가 열리는 반면, 겨울에는 한적한 순례길처럼 바뀌는 특징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늦여름에서 초가을 사이, 달도테마공원의 활동과 미황사 주변의 낙엽 산책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시기를 추천한다.
마지막으로, 이 코스가 주는 가장 큰 선물은 ‘균형’이다. 도심과 자연, 문화와 생태, 역사와 현재, 걷기와 체험. 그 모든 것이 적절한 템포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싶은 이들에게, 남파랑길 89코스는 남도의 품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명상 같은 시간이 될 것이다. 이 길을 걷고 나면 발바닥은 피곤할지라도, 마음은 한없이 가벼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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