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역사, 그리고 삶의 냄새가 살아 숨 쉬는 해안길
남파랑길 80코스는 전라남도 장흥군 회진면에서 출발하여 강진군 마량항으로 이어지는 **문학적 감수성과 역사적 흔적이 공존하는 해안길**이다. 이 길은 단순히 걷는 행위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남도의 대표 문인 **이청준**과 **한승원**의 삶과 작품 세계를 따라 걷는 여정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청준 생가를 비롯하여 그의 대표작 「천년학」의 촬영 세트장과 작품의 배경이 된 여러 장소들을 거닐며, 글로만 읽었던 문장의 풍경을 눈앞에 펼쳐보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길의 출발점인 회진시외버스터미널을 나서면 곧 조선시대 왜구를 막기 위해 축성된 회령진성에 닿는다. 흔적만으로도 강한 울림을 주는 이 유적은 남도의 바닷가 마을들이 겪었던 고난의 역사를 상기시킨다. 이후 길은 천천히 해안을 따라 흐르며, 조용하고 정감 있는 마을들을 지나게 된다. 마을 곳곳에서 마주하는 평범한 일상의 풍경은 마치 한 편의 소설 속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 코스의 진가는 걸을수록 더욱 분명해진다. 단순히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바닷바람과 함께 이야기의 흐름에 몸을 실으며 문학과 자연의 경계를 넘나드는 여정이 되는 것이다.
소설과 현실이 맞닿은 길에서 마주하는 남도인의 정서
남파랑길 80코스는 **이청준 문학의 근원지**를 체험할 수 있는 매우 특별한 코스다. 대표작 「축제」, 「병신과 머저리」, 「눈길」 등에 녹아든 남도인의 삶과 정서가 바로 이곳, 장흥의 마을과 바다에서 비롯되었음을 걷는 이가 자연스럽게 느끼게 된다. **이청준 생가**는 외형적으로는 소박하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또한, 「천년학」의 세트장으로 사용된 구간은 이청준 문학의 영상화를 통해 재조명된 공간으로, 마치 작품 속 주인공이 되어 그 길을 걷는 듯한 몰입감을 제공한다. 이 길은 단순한 문학길이 아니라, 소설과 현실이 맞닿는 경계의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여정의 종착점인 마량항은 또 다른 감동을 준비하고 있다. 탁 트인 남해의 수평선과 크고 작은 어선들이 정박해 있는 풍경은 어촌 특유의 활력을 느끼게 한다. **수산시장과 놀토장(토요일 시장)**은 이 지역 어민들의 삶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장이며, 걷는 여행자에게는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남도의 싱싱한 해산물과 인심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시장은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운영되니, 이 시간을 고려해 여정을 조율하는 것이 좋다.
주의 깊은 걸음 속에 더해지는 여행의 농도
남파랑길 80코스는 비교적 짧은 거리이지만, 구간 중 **차량 통행이 잦고 갓길이 없는 도로**를 통과해야 하는 곳이 있어 도보자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해안길 특성상 경치가 뛰어나고 시야가 확 트인 반면, 오히려 주변 환경에 대한 방심을 유도할 수 있기에, 걷는 중간중간 안전을 점검하고, 차량 접근이 예상되는 지점에서는 이어폰 사용을 삼가고 도보자용 반사용 장비를 착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교통편은 비교적 안정적이다. 시작점인 회진시외버스터미널은 접근성이 좋고, 종점인 마량항 역시 마량버스여객터미널에서 도보로 10분 이내 거리이기 때문에 장거리 여행객도 큰 무리 없이 이동할 수 있다. 다만, 지역 버스의 배차 간격이 길 수 있으므로 시간 확인은 필수이며, 장흥 시외버스터미널을 통해 여정을 이어가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동선이 된다.
남파랑길 80코스는 화려하지 않지만, 걷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속도를 되돌아보고, 한 사람의 작가가 바라본 세계를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 길을 걷는 동안, 소설의 한 장면처럼 바다에 비친 하늘을 보며 생각에 잠기고, 마을의 골목에서 한숨 돌리는 그 순간들이 여행의 본질을 일깨운다. 걷는다는 것이 단지 목적지를 향하는 행위가 아니라, 사람과 이야기, 삶의 무게를 다시금 느끼는 과정이라는 것을 남파랑길 80코스는 묵묵히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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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준의 문학과 바다가 만나는 길, 남파랑길 80코스에서 걷는 남도의 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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